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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부터 남북 정상회담을 하는데 장소는 평양입니다.
일시2018년 9월 18일(화) ~ 20일(목)
장소평양 일원
  지코도 갔다죠? 문대통령은 오늘 10시 쯤에 도착예정이랍니다. 그럼 남북 정상회담에 관련된 내용을 살짝 올려보겠습니다.

걸어온 길
  남과 북은 오랜 분단의 시간 동안 많은 갈등을 겪었으나 분단의 비극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대화와 교류 노력도 꾸준히 진행해 왔습니다. 1953년 6·25전쟁 휴전 이후 다시 대화를 시작한 1971년부터 2018년 9월 12일 현재에 이르기까지 남북 당국은 공식적으로 668회 만났습니다.

    668회    남북 당국 대화
    268회    정치 회담
    154회    인도주의 회담
      60회    사회·문화 회담
      51회    군사회담
    135회    경제 회담

  상호간의 신뢰를 쌓고 평화를 이루기 위한 남북 간 대화 노력은 50년 남짓 진행되었습니다. 지난 2000년과 2007년의 <남북정상회담>은 남북이 적대와 대립 속에서도 유지해온 대화의 여정 위에 세워진 굵직한 이정표입니다.

1970년대
  1960년대까지 국제적 냉전의 영향 아래 대화에나서지 못했던 남과 북은 1970년대 들어국제사회에 화해·협력 분위기가 도래하자 대화의물꼬를 텄습니다.

1971년
  남북적십자회담 파견원 접촉
  최초의 남북대화는 1971년 8월 20일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위한 적십자회담의 파견원접촉이었습니다. 이듬해인 1972년 8월부터1973년 7월까지 이산가족 주소와 생사확인 등5개항을 의제로 남북적십자회담 본회담이 모두일곱 차례 열렸습니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한편 1972년 5월 남북 대표가 서울과 평양을오가며 회담을 가진 결과, 분단 이후 최초합의문서인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고남북조절위원회를 발족했습니다. 성명에서는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통일 3원칙을 비롯하여상대방 중상 비방 중지, 군사충돌 방지 조치,서울-평양 상설 직통전화 설치 등을합의했습니다. 그러나 냉전체제를 기반으로 한적대적 대결구도를 극복하지 못함으로써남북관계 진전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1980년대
  초반 남북관계는 위기를 겪었으나 중반에들어서면서 남북대화가 활발해지기 시작했고경제·체육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됐습니다.

1984년 9월 18일
  정부는 북측의 대남 수해물자 제공 제의를받아들였는데 이는 분단 이후 최초로 이뤄진인도적 지원 합의였습니다. 또한 같은 해 11월남북경제회담을 시작으로 적십자회담, 국회회담예비접촉, 체육회담 등 일련의 남북회담이열렸습니다.

1985년 5월 27일
  1985년 5월 27일에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한 제8차 남북적십자회담본회담이 열렸습니다. 이어 9월 20일부터 나흘간이산가족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단의 서울·평양동시 교환 방문이 진행되면서 남북 주민들의교류가 이뤄졌습니다.

- 1980년대에 남과 북은 적대적인 관계 속에서도 대화를 지속했으며 이전 시기에 비해 대화 채널을 다양화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1990년대
  탈냉전의 흐름에 힘입어 남북관계는 큰 진전을 이뤘습니다.
  1990년 9월 분단 이후 첫 총리급 회담인남북고위급회담이 열렸고 이후 여덟 차례에 걸친남북고위급회담을 통해 1992년 2월에는<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가 발효됐습니다.

<남북기본합의서>
  남북은 남북기본합의서에서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상호체제인정·존중, 정전상태의 평화상태 전환 노력 등을합의했습니다. 아울러 남북고위급회담에서는‘화해’ ‘불가침’ ‘교류협력’ 등 3개 분야의<남북기본합의서> 부속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이 채택됐습니다.

2000년대
  2000년대 들어 남북은 2000년 6월 13일부터15일까지 평양에서 분단 이후 최초로 역사적인<남북정상회담>을 개최했습니다. 평양에서 만난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산가족문제 해결 노력, 경제 및 사회·문화 교류 확대등을 다짐한 <6·15 남북공동선언>에 합의했습니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두 정상은 <6·15 남북공동선언>에서 남측의‘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의공통점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통일문제에 대한논의를 지속하기로 했습니다. 즉, 남북한이 당장제도적·법적 통일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현 체제를 인정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면서 교류협력을 통해 점진적·단계적으로 사실상의 통일을실현해나간다는 데 합의한 것이었습니다.

2007년

2007년 8월 8일, 남북은 <남북정상회담>이 그 해8월 28일부터 30일까지 개최될 것이라고 동시에발표했습니다. 그러나 며칠 뒤인 8월 18일북한이 수해로 인해 회담 일정을 연기할 것을요청해 와 <남북정상회담>은 2007년 10월2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서 열리게 됐습니다.

  10·4 남북 정상 선언문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회담에서정전체제의 종식과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의필요성에 공감하고, 직접 관련된 3자 혹은 4자정상들이 한반도 지역 내에서 만나 종전을선언하는 문제를 협력하여 추진하기로합의했습니다. 또한 정치, 군사, 경제, 사회문화 등다양한 분야에서 공동사업들을 벌여나가기로 합의했습니다.정상회담 결과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위한 선언(10·4 선언)>이 채택됐습니다. <10·4선언>은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의 세부사항에 대한 구체적 이행방안을 담은 합의서였습니다.


2017
  베를린구상
  "우리는 이미 평화로운 한반도로 가는 길을 알고있습니다. <6·15 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남과 북은 두 선언을 통해 남북문제의 주인이우리 민족임을 천명했고 한반도에서 긴장완화와평화보장을 위한 긴밀한 협력을 약속했습니다.경제 분야를 비롯한 사회 각 분야의 협력 사업을통해 남북이 공동번영의 길로 나아가자고약속했습니다. 남과 북이 상호 존중의 토대 위에맺은 이 합의의 정신은 여전히 유효합니다.그리고 절실합니다. 남과 북이 함께 평화로운한반도를 실현하고자 했던 그 정신으로 돌아가야합니다”- 문재인 대통령 독일 쾨르버재단 초청 연설 중에서

2018
  세 번의 정상회담
  2018년 4월 27일, 11년 만에 남북 정상이판문점에서 만났습니다. 평창에서 움튼 한반도평화의 씨앗은 판문점선언이라는 봄꽃으로 피어났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매우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지속 가능한 남북관계발전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구축 문제에 대해진지하게 논의했습니다.
  하루짜리 회담이었지만 그 내용은 알찼습니다.오전 회담은 100분 넘게 이어졌고, 도보다리산책에서 시작된 정상 간 독대는 40여분에 걸쳐이어졌습니다. 두 정상은 논의한 내용을<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에 담아 직접 발표하였으며, 과거와는완전히 다른 ‘한반도 평화시대의 개막’을 전세계에 알렸습니다.

꼭 한 달 뒤인 5월 26일, 남북의정상은 판문점에서 다시 마주앉았습니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긴급한 현안 문제를논의하기 위해 전격적으로 두 번째 회담이 이뤄진것입니다. 이 만남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다시한 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하였고, 남북 정상은 판문점 선언을 조속히이행할 것을 재확인하였습니다. 친구 간의 일상적만남처럼 이뤄진 두 번째 정상회담, 정례적정상회담과 함께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쉽게 만날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었습니다.
[자료출처]남북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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