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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세자는 아버지의 명령으로 뒤주에서 굶어 죽은 부왕에게 사사된 비극적 운명의 세자라고 합니다. 사도세자는 또한 이산 정조正祖의 아버지 이기도 합니다.


사도세자

思悼世子


  1735년에 태어나 1762에 사망했습니다.


  흔히 정치는 비정하다, 권력은 부자(父子) 사이에도 나눌 수 없다는 짧은 문장은 그런 비정함을 압축하고 있다. 대체로 구체적 사실의 집적에서 추상적 개념이 도출되듯이, 이 표현도 유사 이래 권력을 둘러싼 인간의 수많은 암투를 겪으면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조선 왕실에서도 그런 사례는 드물지 않았다. 잠시만 생각해도 태조와 태종, 선조와 광해군, 인조와 소현세자, 대원군과 고종의 관계가 떠오르지만, 그 비극성과 구체성에서 가장 압도적인 사례는 이 글의 주제인 사도세자(思悼世子, 1735∼1762)와 영조(英祖, 1694∼1776, 재위(1725∼1776)의 경우일 것이다.

  사도세자의 비극은 널리 알려져 있다. 차기의 국왕을 예약한 세자의 지위에 있었지만, 친아버지의 명령으로 27세 때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은 그 비극의 객관적 외형을 구성한다. 그리고 그 죽음이 엽기적인 방식으로 집행되었다는 측면은 그 비극을 더욱 끔찍하게 만들었다. 전근대 왕조국가에서 국왕은 그야말로 지존의 존재였다. 이론적으로는 자신을 제외한 그 국가의 모든 사람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왕권의 절대성을 가장 잘 상징할 것이다. 현실의 크고 작은 수많은 사건들도 그 원인과 과정에 관련된 주장과 해석이 어지럽게 충돌한다. 그러니 전근대의 왕조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들이 개입된 사건의 내면은 더욱 복잡할 것이다. 이 짧은 글에서는 신뢰할 수 있는 기록을 따라가면서 될 수 있는 대로 그 과정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자료출처]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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